요한복음 14장의 묵상을 통해 제가 예수님의 삶과 신앙을 본받아 어떻게 계획하며 삶에 실천하고 있는지를 다룹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신앙적 여정, 재정 계획, 노후 준비 등의 현실적인 요소들을 신앙과 조화롭게 결합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거울을 본다. 아침마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지친 모습일까, 아니면 마음속에 작은 희망이 자리 잡았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내가 정말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1. 예수님의 사랑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아버지를 이미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삶과 행적이 곧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나 또한 그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내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전히 세상의 무게에 흔들리고, 때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보다 나의 편의를 좇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내미셨으며, 병든 자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미셨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과연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예수님의 행적을 떠올린다. 광야에서, 거리에서, 낮은 자들의 곁에서 언제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하셨다. 세상의 성공기준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는 그곳에서 참된 사랑을 실천하셨다.
사람들은 출세와 안락을 꿈꾸지만,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자와 함께 식사하며, 병든 자의 손을 잡으며, 슬퍼하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나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출 때가 많다.
내 작은 손길이 정말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며, 지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고민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닐까? 손을 내밀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작은 친절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길이 아닐까 싶다.
2. 가족과 함께하는 신앙의 여정- 조기 은퇴, 그 너머의 삶
우리 가족은 요즘 미래(노후 계획)를 함께 그려 나가고 있다. 손에 잡히는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그 끝자락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조기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흔히들 경제적 자유를 떠올리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 이상의 무언가다. 단순히 일에서 벗어나 여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삶을 돌아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때로는 우리가, 때로는 다른 누군가가 그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으려면,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단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7~8년이라는 시간을 목표로 삼아, 재정적 자립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일이 곧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돈이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사람이란 때로는 계획을 세울 때보다, 그 계획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더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분명 선한 뜻에서 시작했어도, 어느 순간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버릴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다잡기로 했다. 우리가 왜 이 길을 가기로 했는지, 무엇을 위해 이 삶을 준비하는지,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새기자고.
시간이 흐르면 계획은 달라질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찾아올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다. 어떤 길을 가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우리가 이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가기를.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답게 살아가고 싶다.
3. 신앙과 노후 계획의 균형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집을 구입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허락된 재정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방법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계획은 단순하다. ****주의 *** 카운티에 아들 Sam의 집과 우리 가족이 거할 집을 마련하고, *******주의 **타운에서는 두 개 이상의 부동산(집)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소유의 개념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돈에 얽매이지 않고, 부동산이 목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오직 삶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자 한다.
예전에 한국의 **에서 **아파트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해 주셨던 것처럼,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맞는 곳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는 돈을 좇아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물질적인 안정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으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바라는 노후의 모습이다. 그렇게 우리는 신앙과 삶 간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씩 나아가야 한다.
4. 가족 간의 합의와 신앙의 조화
얼마 전 가족들과 노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 언니 Joan과 동생 Hanna와 함께 이야기하던 중, 작은 형부가 “우리가 나중에 다 함께 모여 살 집을 마련하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었다. 큰 건물을 지어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듣기에는 훈훈했지만, 요즘 계획하고있는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각자의 가족이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형태를 원했다. 지나치게 밀착된 공동 생활보다는, 신앙을 중심으로 서로를 지지하며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는 삶이 우리 가족이 바라는 방식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조율하면서, 각자의 가족이 자율성을 유지하되, 가능하면 아이들과 가까운 동네에서 모여 살기로 했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신앙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5.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실천
남편과 함께 미국 워싱턴의 *** 카운티에서 살 집을 찾고, 아들인 Sam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다. 요즘은 여러가지 일들로 많이 바쁘다. 좀 더 시간을 내어서 구체적인 정보를 찾고 정리 하기로 하자.(이 적용점은 다음달에 실천했다. Sam에게 우리의 계획을 설명해주고 ***카운티의 모델하우스를 셋이 함께 방문했다.)
우리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삶은 단순히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과정이다. 경제적 안정이 중요한 만큼,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재물, 건강, 사랑…)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먼 훗날,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도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쌓아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오셨음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