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 마가복음 3장에서 배운 침묵과 선포의 권세 3가지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은 침묵과 선포, 그리고 권위로 이루어진다. 마가복음 3장에서 만난 예수님의 침묵과 명령을 따라 오늘의 기도와 삶을 다시 돌아본다. 이 글은 그 묵상의 여정을 담고 있다.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처럼, 나도 삶의 모든 순간마다 믿음으로 선포한다.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의 권세를 기억하며 기도한다.

 

1.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 조용한 침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난 이후에 성경을 펼치는 시간은 내 하루의 문을 여는 문장과도 같다. 마가복음 3장은 여러 번 읽었던 본문이지만, 오늘따라 처음 본 것처럼 낯설고 또렷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외친다. 분명히 진실인데, 예수님은 그 입을 막으셨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그 분의 말은 단호했고, 조용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진실을 말하는 것도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참 낯설고 깊게 다가왔다. 요즘처럼 모두가 앞다퉈 자신의 신념을 말하는 시대에, 침묵으로 선을 긋는 방식은 어쩐지 너무 낯설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할 때조차도 성급히 행동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단을 꾸짖는 데 있어 소리로 위협하지 않으셨다. 침묵과 권위로 무게를 더했다.

그 침묵은 마치 무거운 바윗돌처럼 단단했고, 세상의 시끄러운 말들을 잠시 멈추게 했다. 나는 오늘 그 침묵 앞에 머물렀다. 말보다 강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배운 것이다.

 

조용한 침묵에서 시작된 명령
조용한 침묵에서 시작된 명령

 

2. 예수님의 명령은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권위에서 비롯되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은 짧고 담백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게가 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세도 주셨다.’

말씀을 전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 두 가지는 너무 다르지만 예수님은 같은 권위 안에서 그것들을 함께 주셨다.

오빠가 선교지에서 보내온 기도문이 생각난다.
“예수님의 보혈로 명령한다. 어둠은 떠나라. 이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내 안에 거할 수 없다.”

그 말들을 처음 들었을 땐, 어딘가 어색했다. 내가 쓰기엔 너무 큰 말 같았고,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이 내 안에서 익어갔다.

기도 속에서, 그리고 마음이 눌릴 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그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정돈되기 시작했다. 말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예수님의 이름 때문이었다.

 

존재 자체의 권위
존재 자체의 권위

 

3.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정의였다.

 

마가복음 3장에서 늘 마음에 걸렸던 구절이 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말씀 앞에서 위축되어 있었다.

혹시 내가 모르고 성령을 거스른 건 아닐까. 무심코 했던 말이나 지나간 태도 하나가 나를 단절시키진 않았을까.
하지만 오늘, 그 문장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이 말씀은 결국 사단에게 향한 것이었다. 성령의 일을 ‘귀신의 역사’라고 왜곡했던 자들에게 향한 예수님의 단호한 분별이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을 거짓으로 몰아가려는 악한 존재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본문을 덮을 수 있었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
성령을 훼방하는 자

 

4. 예수님의 가족,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

 

가끔 나는 신앙생활이 고립된 싸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과의 온도차, 반복되는 일상의 마모 속에서 ‘혼자만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

그런 날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위로가 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아버지가 새벽마다 안방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 말 없이, 어떤 대단한 의식도 없이, 그저 조용히 앉아 말씀을 펴시던 그 손.

내가 어릴 땐 그게 뭐가 대단한 건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작은 신실함이, 그 매일의 일상이, 예수님의 눈에는 ‘가족’으로 불릴 만한 삶이었다는 것을.

예수님은 혈육보다 믿음을 먼저 언급하셨다. 그래서 그분 안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예수님의 가족
예수님의 가족

 

5. 오늘도 나는 예수님의 방식대로 기도하기로 했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기도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내 안의 두려움은 떠나가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너는 나와 내 가족의 손끝 하나도 해칠 수 없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던 말처럼 입에 익었다.
기도는 크게 외친다고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고 선포할 때 힘을 가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꾸짖으셨고, 명령하셨고, 때로는 침묵하셨다.
그분의 방식은 다정했고, 단호했다.

이제 나도 그 방식을 닮고 싶다.
내 안에 말씀이 깊어질수록, 명령은 더욱 조용해지고 기도는 더욱 단단해진다.

오늘도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삶을 선포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사단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처럼, 내 하루에도 선한 권위가 흐르기를 소망하면서.

 

요한복음 16장에서 배우는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역할, 기도와 확신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