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을 통해 경험한 믿음과 기도의 여정, 그리고 아들의 찬양팀 간증을 담은 6가지 영적 교훈. 과거의 응답을 기억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음을 이상히 여기신 예수님
신앙이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병자에게 손을 얹고 고치시면서, 사람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 그 말은 들을수록 내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믿음이 없다면 기적도 스며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내보내시고,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 이후,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를 선포하고,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며 기도했다.
기도와 믿음, 그리고 실천이 겹칠 때 하나님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그들도, 나도 서서히 배워간다.

반복되는 의심 속의 제자들
삶에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왜 또다시 의심할까? 나도 그랬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광경까지 보여주셨건만, 제자들은 그 기적의 잔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두려움에 빠졌다. 마가는 그들의 마음이 둔해져서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나도 종종 그렇다. 어제의 응답을 오늘 잊고, 내일을 또 두려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그래서 신앙은 기억을 먹고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과거 나를 도우셨던 날들을 떠올릴 수 있을 때, 오늘의 기도는 절망이 아니라 확신으로 바뀐다.

과거의 응답을 기억하는 기도의 힘
기도란 지금의 바람을 말하는 동시에,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작업이다.
나는 종종 지금 당장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난 시간의 하나님을 기억한다. 수첩보다 블로그를 더 자주 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일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 흔적을 남겼는지를 기록하는 일이, 이제는 나에게 기도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아들 Sam을 위해 기도해온 시간도 그렇게 쌓여갔다. 짧지 않은 세월, 매일은 아니어도 꾸준히 이어진 그 기도의 조각들이 모여, 이제는 하나의 긴 서사가 되었다.
신앙은 단순히 순간의 감동이나 눈물의 감격이 아니라, 그 감동을 삶의 시간 위에 얹어 굳혀낸 경험에서 오는 확신이다. 그래서 나는 Sam이 살아가며 기도의 응답을 하나하나 체험하길 바란다.
사람은 하나님의 손길을 피부로 느껴보아야, 세상의 흔들림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자라왔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떠올리는 습관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았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펜을 든다. 어쩌면 이 블로그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 사이의 신뢰를 쌓아가는 통로이자, 언젠가 Sam에게 물려줄 신앙의 족보다.
이 블로그는 내가 살아온 믿음의 흔적이고, 미래를 위한 유산이다.

아들의 찬양팀 첫 예배와 응답된 기도
Sam이 처음으로 대학찬양팀 멤버로 서던 날이 떠오른다. 그 날의 새벽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예배는 정오였고, 우리는 아침 일찍 6시간을 미시간을 향해 차로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전날 밤 늦게 잔 탓에 일어나자마자 모든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늦잠으로 인해 출발이 지체되었고, 예상보다 교통량도 많았다. 급한 마음에 남편은 점점 언성을 높였고, 나는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사탄이 틈을 탄 것이 아닌가 싶어 나는 이를 악물고 화를 삼켰다. 마치 믿음을 지키는 시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늦지 않기를 기도하며 조마조마하게 달린 끝에, 우리는 예배 시작 10분 전에 교회에 도착했다. 겨우 숨을 고르고 예배당에 들어서자 Sam이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기타를 치며 대학팀 찬양멤버 중의 한명으로 찬양하는 그의 모습은 내게 있어 하나님의 응답 그 자체였다. 그 찬양 소리는 단지 음악이 아니었다. 내 기도와 눈물이 녹아든 시간이었고, 나를 지탱해온 간절함의 메아리였다.
그 장면 앞에서, 우리 부부는 나란히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예배가 끝난 후, 아까까지 날이 서 있던 남편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그동안의 갈등이 묘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흘러들어, 마음을 적시고, 관계까지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날은 믿음이 길 위에서 다시 살아난 날이었다.

기도의 열매를 맺기까지
기도는 마치 나무가 땅속 깊이로 뿌리를 뻗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단단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Sam을 위한 기도는 1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나는 단순히 그가 잘 자라기만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을 가지길, 하나님 앞에서 기꺼이 무릎 꿇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도했다.
처음에는 막연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도는 더 구체적이고 깊어졌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그의 진로, 믿음의 친구, 속한 교회 공동체, 그리고 찬양팀과의 만남까지도 기도 제목이 되었다. 마음속에서만 중얼거리던 기도가, 어느새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채우는 의식이 되었다.
한 번은 필라델피아에서 사역하시던 전도사님이 Sam과 상담한 후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Sam은 모 아니면 도입니다. 어머님이 많이 기도하셔야 해요.” 그 말은 칼날처럼 내 가슴을 찔렀지만,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다해 Sam을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그렇게 다시 무릎을 꿇었다.
기도는 시간을 들여야 하고, 눈물을 써야 하며, 때론 침묵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의미 없는 기다림은 아니었다.
그렇게 기도했던 결과는 결국 Sam이 대학에서 찬양팀에 서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은 단지 한 장면이 아니라, 수년 간의 기도와 눈물,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응축된 결실이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언제나 나의 계산보다 느렸지만, 그분은 결코 잊지 않으셨다. 마침내 응답받은 그 날, 나는 지난 12년이 단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믿음이 단단히 뿌리내리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앙은 기도를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마가복음 6장은 믿음이란 결국 기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과거의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오늘을 살아낼 힘이 된다.
기도는 부탁이 아니라 고백이고, 관계의 회복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다.
나는 지금도 Sam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의 신앙 여정에 함께할 것이며, 나 역시 이 블로그에 기도의 흔적을 남겨갈 것이다.
사람은 지나가지만, 기도의 이야기는 남는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신앙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면, 이 기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믿고, 조용히 써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