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에서 배운 기도와 믿음의 원리는 오늘날 신앙인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세우는 길을 제시한다. 이 묵상은 기도, 믿음, 순종의 삶을 성찰하는 신앙적 고백이다.

예수님의 곁에 머물고 싶은 갈망
예수님이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는 장면은 나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서 주님의 영광을 본 이들처럼, 나도 주님 곁에 머물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하고 싶다는 바람이 커져갔다.
이 바람은 단지 기적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함께하고 싶다는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마치 멀리서 불빛을 바라보며 손을 뻗는 아이처럼, 나의 영혼도 그 따스함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 산 위에서의 장면이 내게 주는 울림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앙은 멀리 있는 신비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간절함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마가복음 9장에서 말하는 아버지 안에 거한다는 삶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떠올려본다. 단어 하나하나가 쉽게 삼켜지지 않는다.
“아버지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루하루의 선택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의 뜻대로 걷는다는 의미는 늘 새롭고 낯설다.
그러나 이 말씀이 나에게 주는 확신은 분명하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 결국 어떤 두려움도 무너뜨릴 수 있는 믿음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반복적으로 훈련한다.
나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로는 조용히 말씀을 읽는 매일 아침의 20-30분이, 내 하루의 방향을 바꾼다. 그렇게 나는 말씀 안에 거하려 한다.

말씀을 들으라는 하늘의 명령
구름 속 음성이 들려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의 권위 있는 선언은, 오늘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삶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변형된 영광보다, 더 깊은 의미는 순종 속에 있다. 예수님은 기적을 퍼뜨리기보다, 그 기적이 온전한 복음으로 자리 잡길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입을 다물고, 귀를 열라는 말씀을 남기셨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시끄러운 생각들을 멈추고, 조용히 말씀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제자의 자세임을 이 말씀을 통해 배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은 오래된 문장처럼 보이지만, 내 삶에서는 아직도 시험대 위에 있는 말이다. 그 말씀을 꺼내놓고 기도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믿음 없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기도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진심 어린 고백이며,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낮아짐이다.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기도는 그저 소음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고요히 기도한다. 한 번이면 충분한, 믿음 있는 기도. 아무도 모르게 드리는 그 기도가,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열쇠는 늘 손에 쥐어져 있었다는 것도.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
귀신 들린 소년을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은 내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 외의 것으로 해결하려 했는가. 말, 조언, 위로, 계획… 결국 문제를 뚫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기도는 영적인 무장이며, 그 어떤 전략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소리일 뿐이지만, 믿음이 깃든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라는 이름의 창을 활짝 연다. 그 창문 너머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진리의 중심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마가복음 9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은 행하지만 제자 무리와 함께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반응을 통해, 진리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그를 막지 마라” 라고 하셨다.
이는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정죄할 수 없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한 판단의 본능, 그것이 때로는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위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했다.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이다.” 진리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내가 지금 올바로 믿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곧 진리를 독점했다는 뜻은 아니다.
마가복음 9장을 통해 나는 겸손하게 듣고, 기도하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는 법을 배운다.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기도한다.
주님, 나의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이 내 삶에 물결처럼 스며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