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할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제자들의 헌신과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성령의 인도하심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기도가 단순한 신앙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연결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진다.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부엌에서 커피를 내린 후 여느 때처럼 오늘도 성경을 펼쳤다. 요한복음 16장이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여전히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말씀. 내가 사는 이 시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울림이 남아 있다. 바울의 서신도 중요하지만, 복음서는 예수님의 직설적인 말씀들이 오롯이 남아 있어 더욱 애틋하다. 나는 오늘도 그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
1.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제자들의 헌신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말씀들이 정말 사실일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쳤다. 단순한 신념을 넘어, 그들은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전하기 위해 박해와 위협 속에서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거짓을 전했다면, 그토록 헌신할 수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간은 본래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짓을 주장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박해를 두려워하기보다 기쁨으로 감내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다. 한 번쯤은 삶의 편의를 위해 침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은 끝까지 진리를 증언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들이 본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었기에,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헌신이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전부 내어놓고, 그것이 후세에까지 남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 마음이 없다면, 결코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된다. 제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생명까지도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기록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27절 말씀이 유독 내 마음을 울렸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음이라.” 나는 오래도록 신앙을 가져왔지만,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마다 흔들릴 때가 많았다.
사람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세상의 기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선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행실과 무관하게, 그분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믿는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이, 꼭 눈에 보이는 형태로 증명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사랑이 물질적인 보상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을 그렇게 쉽게 흩날리는 종이 돈처럼 다루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힘들 때 더욱 단단해지고, 우리가 슬플 때 그 슬픔 속에서 함께 머무르며 우리를 감싸주시는 것이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우리의 곁을 지켜주시는 사랑이다.
삶이 힘들 때, 그 사랑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고난이 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필요한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때로는 겉으로 보기에 매정해 보일지라도, 그 속엔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살면서 몇 번이고 다시 새기고 싶은 진리이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흔들리면서도, 다시금 서고, 다시금 걸어갈 힘을 얻는다.
3. 성령이 전하는 진리와 장래의 일
요한복음 16장 13-15절에서는 성령이 장래의 일을 알려준다고 한다. 이 말씀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뜻이 아닐까.
문득 작은형부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형부가 고혈압으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는데, 성경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형부를 위한 것 같았다. 어쩌면 성령께서 그를 위해 기도하도록 내 마음을 움직이신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며 어떤 확신을 얻는다. 그것은 때로는 불현듯 마음속 깊이에서 떠오르는 감각이며, 때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조용한 확신이기도 하다. 마치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듯이, 성령의 인도하심도 그렇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든다. 내가 기도하며 형부를 위해 간절히 구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깊은 평안을 주시는 것을 느꼈다. 비록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성령은 때로는 내 앞길을 환히 밝혀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저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분이시다. 형부를 위해 기도하며, 나는 과거에도 수없이 이런 순간들을 경험했음을 깨달았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두려움 속에서 방황할 때, 그리고 간절한 바람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성령은 조용히 내 마음을 이끌어 오셨다. 그것이 바로 장래의 일을 알려주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이끄심이 아닐까.
4.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르침 중 하나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살면서 수도 없이 깨닫는다. 마음속에서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데, 막상 현실 속에서는 오해가 쌓이고, 작은 일로 서운함이 스며들고, 어느 순간에는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이란 것이 무언가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인내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오늘 아침, 나는 작은언니 Joan과 작은형부에게 받은 말씀을 전했다. 출근 전에 형부를 위해 기도하며 받은 말씀을 언니에게 문자로 보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기도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감싸는 일이라 믿는다. 마음 한편으로는 문자를 보내고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씀이 언니에게 위로가 될까? 형부가 이 기도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저녁이 되자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부가 병원에서 받은 약을 드시고 많이 좋아지셨다고 했다.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나는 안도감 속에서도 다시금 생각했다. 기도란 결국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작은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비록 내 기도가 당장 형부의 건강을 완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기도와 사랑이 작은 씨앗이 되어 언니와 형부의 마음에 안식을 주었을 거라 믿는다. 사랑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렇게 소소한 나눔에서,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는 더 깊고 넓은 사랑으로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5. 기도로 이루어지는 기쁨
요한복음 16장 23-24절에서는 구하고 받으며 기쁨이 충만해지라고 하셨다. 기도를 하면서도 때때로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걸까? 때로는 묻고 또 묻다가도, 이내 잊고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들 Sam이 PayPal 인턴십을 위해 코딩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의 손끝에서 마지막 한 줄의 코드가 입력될 때, 마음속에서는 조용한 떨림이 번질 것이다.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 그의 손이 얼마나 떨렸을지 상상해 본다. 그의 땀방울이 컴퓨터 앞에서 흘러내리며 한 줄 한 줄을 채웠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지금 Sam을 위해서 기도하듯이 그 사람이 되어서 그 상황을 상상하며 기도하는 버릇이 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기도보다 그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기도할 때 내 기도는 더욱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Sam 이 좋은 결과를 얻어 자신감을 회복하기를, 그리고 그의 기도가 응답받아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기도를 하면서도 불안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도를 마치고 나니 알 수 없는 평안이 가득했다. 마치 한숨을 쉬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함께하고 있다.”
사실 기도의 응답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도를 하며 이미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신기하게도,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응답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아닐까.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기도로 가득 채우는 순간 느껴지는 위로.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확신이 존재했다.
요한복음 16장은 내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여정이며, 내가 매일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 변화가, 나의 삶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성경을 덮는다. 어쩌면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또다시 같은 고민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앙이란, 그렇게 날마다 흔들리고 또 다잡으며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