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에서 배우는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역할, 기도와 확신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할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제자들의 헌신과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성령의 인도하심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기도가 단순한 신앙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연결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진다.

요한복음 16장에서 배우는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역할, 기도와 확신
요한복음 16장: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역할, 기도와 확신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부엌에서 커피를 내린 후 여느 때처럼 오늘도 성경을 펼쳤다. 요한복음 16장이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여전히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말씀. 내가 사는 이 시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울림이 남아 있다. 바울의 서신도 중요하지만, 복음서는 예수님의 직설적인 말씀들이 오롯이 남아 있어 더욱 애틋하다. 나는 오늘도 그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

1.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제자들의 헌신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말씀들이 정말 사실일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쳤다. 단순한 신념을 넘어, 그들은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전하기 위해 박해와 위협 속에서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거짓을 전했다면, 그토록 헌신할 수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간은 본래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짓을 주장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박해를 두려워하기보다 기쁨으로 감내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다. 한 번쯤은 삶의 편의를 위해 침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은 끝까지 진리를 증언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들이 본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었기에,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헌신이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전부 내어놓고, 그것이 후세에까지 남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 마음이 없다면, 결코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된다. 제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생명까지도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기록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27절 말씀이 유독 내 마음을 울렸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음이라.” 나는 오래도록 신앙을 가져왔지만,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마다 흔들릴 때가 많았다.

사람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세상의 기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선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행실과 무관하게, 그분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믿는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이, 꼭 눈에 보이는 형태로 증명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사랑이 물질적인 보상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을 그렇게 쉽게 흩날리는 종이 돈처럼 다루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힘들 때 더욱 단단해지고, 우리가 슬플 때 그 슬픔 속에서 함께 머무르며 우리를 감싸주시는 것이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우리의 곁을 지켜주시는 사랑이다.

삶이 힘들 때, 그 사랑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고난이 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필요한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때로는 겉으로 보기에 매정해 보일지라도, 그 속엔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살면서 몇 번이고 다시 새기고 싶은 진리이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흔들리면서도, 다시금 서고, 다시금 걸어갈 힘을 얻는다.

3. 성령이 전하는 진리와 장래의 일

요한복음 16장 13-15절에서는 성령이 장래의 일을 알려준다고 한다. 이 말씀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뜻이 아닐까.

문득 작은형부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형부가 고혈압으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는데, 성경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형부를 위한 것 같았다. 어쩌면 성령께서 그를 위해 기도하도록 내 마음을 움직이신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며 어떤 확신을 얻는다. 그것은 때로는 불현듯 마음속 깊이에서 떠오르는 감각이며, 때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조용한 확신이기도 하다. 마치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듯이, 성령의 인도하심도 그렇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든다. 내가 기도하며 형부를 위해 간절히 구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깊은 평안을 주시는 것을 느꼈다. 비록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성령은 때로는 내 앞길을 환히 밝혀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저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분이시다. 형부를 위해 기도하며, 나는 과거에도 수없이 이런 순간들을 경험했음을 깨달았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두려움 속에서 방황할 때, 그리고 간절한 바람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성령은 조용히 내 마음을 이끌어 오셨다. 그것이 바로 장래의 일을 알려주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이끄심이 아닐까.

4.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르침 중 하나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살면서 수도 없이 깨닫는다. 마음속에서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데, 막상 현실 속에서는 오해가 쌓이고, 작은 일로 서운함이 스며들고, 어느 순간에는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이란 것이 무언가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인내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오늘 아침, 나는 작은언니 Joan과 작은형부에게 받은 말씀을 전했다. 출근 전에 형부를 위해 기도하며 받은 말씀을 언니에게 문자로 보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기도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감싸는 일이라 믿는다. 마음 한편으로는 문자를 보내고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씀이 언니에게 위로가 될까? 형부가 이 기도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저녁이 되자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부가 병원에서 받은 약을 드시고 많이 좋아지셨다고 했다.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나는 안도감 속에서도 다시금 생각했다. 기도란 결국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작은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비록 내 기도가 당장 형부의 건강을 완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기도와 사랑이 작은 씨앗이 되어 언니와 형부의 마음에 안식을 주었을 거라 믿는다. 사랑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렇게 소소한 나눔에서,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는 더 깊고 넓은 사랑으로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5. 기도로 이루어지는 기쁨

요한복음 16장 23-24절에서는 구하고 받으며 기쁨이 충만해지라고 하셨다. 기도를 하면서도 때때로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걸까? 때로는 묻고 또 묻다가도, 이내 잊고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들 Sam이 PayPal 인턴십을 위해 코딩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의 손끝에서 마지막 한 줄의 코드가 입력될 때, 마음속에서는 조용한 떨림이 번질 것이다.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 그의 손이 얼마나 떨렸을지 상상해 본다. 그의 땀방울이 컴퓨터 앞에서 흘러내리며 한 줄 한 줄을 채웠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지금 Sam을 위해서 기도하듯이 그 사람이 되어서 그 상황을 상상하며 기도하는 버릇이 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기도보다 그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기도할 때 내 기도는 더욱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Sam 이 좋은 결과를 얻어 자신감을 회복하기를, 그리고 그의 기도가 응답받아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기도를 하면서도 불안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도를 마치고 나니 알 수 없는 평안이 가득했다. 마치 한숨을 쉬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함께하고 있다.”

사실 기도의 응답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도를 하며 이미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신기하게도,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응답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아닐까.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기도로 가득 채우는 순간 느껴지는 위로.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확신이 존재했다.

요한복음 16장은 내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여정이며, 내가 매일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 변화가, 나의 삶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성경을 덮는다. 어쩌면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또다시 같은 고민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앙이란, 그렇게 날마다 흔들리고 또 다잡으며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요한복음 15장: 사랑의 실천과 순종, 기도 응답을 통한 변화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사랑의 실천과 순종, 기도를 통해 응답을 경험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동료인 Samantha에게 짜증을 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했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그녀에게 연락해 작은 순종을 실천했다. 결국 사랑과 순종이 하나님의 뜻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요한복음 15장: 사랑의 실천과 순종, 기도 응답을 통한 변화
요한복음 15장: 사랑의 실천과 순종, 기도 응답을 통한 변화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우리를 가지로, 하나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며 예수님과 연결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 나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이 떠올랐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Samantha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1. 사랑의 실천이 어려운 순간

요한복음 15:12-14을 읽으며 Samantha가 떠올랐다. 그녀는 요즘 직장에서 힘들어하며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또한, 다른 사람의 커미션을 물어보거나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나에게 일방적으로 컴퓨터 교육을 요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돕고자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행동이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고 말았다.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고, 내가 내뱉은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조절되지 않은 채 표출된 후였다.

그 후에도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내 행동이 옳았는지 자문해보았지만, 결국 나의 반응이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단순히 감정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더욱 인내하고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결국 회개의 눈물이 흐르며, 다시금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2.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돌아보다

사실, Samantha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은 나였다. 약 한 달 전, 말씀을 묵상하며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엑셀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몇 달 후 텍사스로 이사를 가야 했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기본적인 컴퓨터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녀의 어려움을 돕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귀찮아졌고, 내 시간을 내어 가르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 일정이 바빠질수록 그녀를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워졌고, 종종 약속을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또다시 컴퓨터 교육에 대해 묻자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고,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늘 묵상을 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에는 순수한 사랑의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믿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안에는 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그녀를 돕는 것이 내게도 유익이 될 것이라는 마음이 내 행동의 저변에 깔려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베푼 사랑이라 생각했던 행동이 결국 나 자신의 이익과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Samantha에게 먼저 연락하여 미뤄왔던 컴퓨터 교육 시간을 조정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작은 결단이 나에게 더 큰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주리라 믿으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길 기도했다.

 

3. 사랑의 실천을 위한 작은 행동

진정한 사랑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마치 배고픈 사람에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원하고 필요로 하는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내가 편한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Samantha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그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내가 편한 시간에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배우기 가장 좋은 시간을 찾아 함께하는 것이 중요했다.

묵상 중에 깨달은 것은 즉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 이번 주 목요일에 시간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기쁘게 가능하다고 답했다. 내 마음속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 순간, 내 안에 평안과 기쁨이 흘러넘쳤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4. 순종을 통해 응답받는 기도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다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이 말씀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직접 역사하신다는 확신을 주는 말씀이었다. 방금 내가 Samantha에게 연락하는 작은 순종을 실천했으니, 이제 내 마음에 품고 있던 간절한 기도를 올릴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들 Sam의 인턴십 인터뷰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여러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원하는 곳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있다. 그동안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고, 실력을 쌓아왔지만, 최종 결정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Sam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선의 길로 인도되어지기를,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 후에도 내 마음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집중되었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다르게 인도하신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순종임을 다시금 떠올리며, 어떤 결과가 오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Sam은 Hulu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작은 일에 순종할 때,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때로는 우리의 바람과 일치하는 응답이 올 때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응답을 하시면서 더 좋은 길로 우리를 이끄시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작은 일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순종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을 이루신다.

 

5. 사랑은 실천으로 증명된다

요한복음 15장의 사랑의 실천에대한 묵상을 통해 나는 사랑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이다. Samantha에게 짜증을 내던 나의 모습은 사랑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오늘, 작은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사랑이다.

그녀에게 한 통의 문자를 보내는 것, 시간을 내어 엑셀을 가르쳐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우리는 때때로 사랑이 거창한 헌신이나 위대한 희생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간다.

나는 오늘 이 작은 결단을 내렸다. Samantha에게 보낸 한 통의 문자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첫 걸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결국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요한복음 14장 묵상 – 예수님의 사랑과 신앙, 가족과 노후 계획을 실천

요한복음 14장의 묵상을 통해 제가 예수님의 삶과 신앙을 본받아 어떻게 계획하며 삶에 실천하고 있는지를 다룹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신앙적 여정, 재정 계획, 노후 준비 등의 현실적인 요소들을 신앙과 조화롭게 결합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묵상 - 예수님의 사랑과 신앙, 가족과 노후 계획을 실천
요한복음 14장 묵상 – 예수님의 사랑과 신앙, 가족과 노후 계획을 실천

나는 때때로 거울을 본다. 아침마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지친 모습일까, 아니면 마음속에 작은 희망이 자리 잡았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내가 정말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1. 예수님의 사랑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아버지를 이미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삶과 행적이 곧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나 또한 그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내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전히 세상의 무게에 흔들리고, 때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보다 나의 편의를 좇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내미셨으며, 병든 자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미셨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과연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예수님의 행적을 떠올린다. 광야에서, 거리에서, 낮은 자들의 곁에서 언제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하셨다. 세상의 성공기준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는 그곳에서 참된 사랑을 실천하셨다.

사람들은 출세와 안락을 꿈꾸지만,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자와 함께 식사하며, 병든 자의 손을 잡으며, 슬퍼하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나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출 때가 많다.

내 작은 손길이 정말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며, 지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고민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닐까? 손을 내밀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작은 친절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길이 아닐까 싶다.

2. 가족과 함께하는 신앙의 여정- 조기 은퇴, 그 너머의 삶

우리 가족은 요즘 미래(노후 계획)를 함께 그려 나가고 있다. 손에 잡히는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그 끝자락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조기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흔히들 경제적 자유를 떠올리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 이상의 무언가다. 단순히 일에서 벗어나 여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삶을 돌아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때로는 우리가, 때로는 다른 누군가가 그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으려면,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단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7~8년이라는 시간을 목표로 삼아, 재정적 자립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일이 곧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돈이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사람이란 때로는 계획을 세울 때보다, 그 계획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더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분명 선한 뜻에서 시작했어도, 어느 순간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버릴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다잡기로 했다. 우리가 왜 이 길을 가기로 했는지, 무엇을 위해 이 삶을 준비하는지,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새기자고.

시간이 흐르면 계획은 달라질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찾아올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다. 어떤 길을 가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우리가 이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가기를.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답게 살아가고 싶다.

 

3. 신앙과 노후 계획의 균형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집을 구입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허락된 재정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방법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계획은 단순하다. ****주의 *** 카운티에 아들 Sam의 집과 우리 가족이 거할 집을 마련하고, *******주의 **타운에서는 두 개 이상의 부동산(집)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소유의 개념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돈에 얽매이지 않고, 부동산이 목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오직 삶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자 한다.

예전에 한국의 **에서 **아파트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해 주셨던 것처럼,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맞는 곳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는 돈을 좇아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물질적인 안정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으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바라는 노후의 모습이다. 그렇게 우리는 신앙과 삶 간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씩 나아가야 한다.

 

4. 가족 간의 합의와 신앙의 조화

얼마 전 가족들과 노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 언니 Joan과 동생 Hanna와 함께 이야기하던 중, 작은 형부가 “우리가 나중에 다 함께 모여 살 집을 마련하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었다. 큰 건물을 지어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듣기에는 훈훈했지만, 요즘 계획하고있는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각자의 가족이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형태를 원했다. 지나치게 밀착된 공동 생활보다는, 신앙을 중심으로 서로를 지지하며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는 삶이 우리 가족이 바라는 방식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조율하면서, 각자의 가족이 자율성을 유지하되, 가능하면 아이들과 가까운 동네에서 모여 살기로 했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신앙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5.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실천

남편과 함께 미국 워싱턴의 *** 카운티에서 살 집을 찾고, 아들인 Sam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다. 요즘은 여러가지 일들로 많이 바쁘다. 좀 더 시간을 내어서 구체적인 정보를 찾고 정리 하기로 하자.(이 적용점은 다음달에 실천했다. Sam에게 우리의 계획을 설명해주고 ***카운티의 모델하우스를 셋이 함께 방문했다.)

우리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삶은 단순히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과정이다. 경제적 안정이 중요한 만큼,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재물, 건강, 사랑…)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먼 훗날,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도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쌓아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오셨음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