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어떻게 가까이 왔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제자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수님은 단지 믿음을 감정이나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으시고, 행동과 삶의 태도로 증명하셨다. 본 장을 통해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죽은 후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일상 속에 도래한 실제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 있다
하루는 거실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국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은 늘 같았다. 죽은 후 가는 곳, 모든 고통이 사라진 곳, 하나님의 나라. 하지만 누가복음 10장 9절에서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며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그 말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렇다면 천국은 죽은 후에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게 이미 다가온 현실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그것을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천천히 배워갔다. 여섯 남매를 돌보느라 항상 바쁘고 지쳐 있던 어머니는 감정 하나하나를 헤아려줄 여유가 없으셨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매 순간을 실천과 책임으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감정의 언어 대신 행동으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다정한 말 대신 씻겨주고 먹여주고 감기를 밤새 간호해주는 손길이 곧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와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해 혼자 울던 어느 저녁, 아무 말 없이 식탁에 미역국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역국 끓였으니 얼른 먹어라.”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눈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날, 나는 어머니가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나를 일일이 위로할 여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손끝으로 전해오는 그 사랑은 깊고 조용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내 삶의 어둠 한가운데에 찾아왔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조용한 헌신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고, 그 순간 내 마음 한켠에 천국이 피어났다.

평안은 조건이 아니라 선언으로 주어지는 선물
누가복음 10장 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 먼저 말하라. 이 집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있다. 그 평안이 그 집 사람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평안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문득 내 아이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며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고 있는 내 아이는, 요즘 부쩍 말수가 줄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얼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 부모로서의 역할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그 미묘한 감정의 벽 앞에 망설이게 된다. 어느 날, 아이가 방 문을 꼭 닫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괜히 서운함이 밀려왔다. 마음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준 걸까” 하는 자책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식탁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던 아이가 무심히 내게 말했다. “엄마, 아빠랑 나를 서포트 해 주셔서 감사해요. 친구들과 이야기 해보면 엄마 아빠만큼 나를 서포트 해 주는 부모가 없는것 같아요. 특히 아시안 아이들요”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마음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보낸 사랑의 방식은 직접적인 대화도, 길고 진지한 조언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아이의 필요를 살피고 돌봐준 것 뿐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에게는 평안의 시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안은 상대방이 곧바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아이의 짧은 말 한마디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슬며시 마음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평안은 선언처럼 일방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서히 젖어드는 것임을. 당장 열매를 맺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반드시 응답으로 돌아온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치유하는 손길로 드러난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 말씀은 내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예수님의 복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치유의 행위였다. 나는 그것을 삶 속에서 조금씩 배워갔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한 목사님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 안에도 치유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 말은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편에 잔잔히 남아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병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시 어머님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 나는 한국을 방문해서 2주간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돌봐드렸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저녁마나 나는 어머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네 기도 덕분에 마음이 놓인다.”고 말해주셨다. 그 말은 내게 더 큰 확신을 주었다. 기도는 때로 병을 낫게 하고, 때로는 마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잠재운다.
교회에서도 아픈 집사님들을 위해 몇 번 조용히 기도한 적이 있다. 폐암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집사님과 매주일 아침에 만나서 손을 얹고 기도했던 날이 기억난다. 특별한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집사님은 기도 후에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하게, 오늘은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그 한마디가 내게는 치유의 열매였다. 나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언제나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그 사랑은 분명히 전해진다.
복음은 그렇게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처럼 다가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기적이 아니라, 조용히 곁에 앉아 함께해주는 마음 속에서 시작된다. 기도의 손길이 닿은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평안이 내려앉는 것을 나는 믿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명을 따라 사는 곳에서 확장된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무례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명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에 마음이 분산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한 번은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었지만, 핸드폰 알림에, 집안일에, 이런저런 잡념에 결국 아무것도 써내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향해 집중하기 위해선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사명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오늘 내가 맡은 역할에 성실하게 임하는 일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맡겨진 자리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나를 통해 세상 속으로 확장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서 믿음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서 믿음으로 시작된다. 누가복음 10장은 이 땅에서의 천국이란 주제를 다시 일깨워준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위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언이었다. 그 이름이 기록된 자답게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불안과 염려로 나의 하루를 채우지 않기로 결단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고, 내게 맡겨진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재정은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일상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걷는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내 안에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