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묵상을 통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깁니다.

사랑은 말이 아닌 삶의 태도와 실제적인 실천을 통해 완성됩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작은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친절과 배려는 곧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이 됩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을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과 적용점을 나눕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의 말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는 말씀은 요즘 내게 세 번이나 반복되어 다가온 강력한 메시지였다. 처음에는 북한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며, 두 번째는 인도의 빈곤층을 조명하는 강의를 들으며, 세 번째는 우연히 읽게 된 최일도 목사님의 기사에서 이 말씀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내 삶에 찾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매번 다른 상황과 내용 속에서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인가 말씀하시려는 사인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감동으로, 그다음엔 의문으로, 마지막에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남은 인생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복음을 안다는 것이 단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임을 이 말씀을 통해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하고, 그 뜻은 결국 사랑과 섬김이라는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그 뜻대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일상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자라난 씨앗처럼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던 마음의 울림이, 말씀을 반복해서 마주할수록 점점 명확한 형태를 띠며 내 삶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는 삶, 그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이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를 나는 다시금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나의 신앙이 얼마나 실제적이며 구체적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믿음은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고, 행동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살아 있는 진리여야 한다.
이제 나는 그 말씀이 반복된 이유를 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물으셨던 것이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너는 정말 나를 따라 살고 있느냐?” 그 질문 앞에 나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내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되어야 한다.

“밥퍼” 최일도 목사님, 삶으로 증명한 복음
1989년, 내가 처음으로 교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던 시절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예배당의 공기, 낯선 찬송가의 가사들, 그리고 기도 시간의 고요한 침묵은 내게 다소 이질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낯섦 속에서 따뜻한 울림을 주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책은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이 말씀을 어떻게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간증서 같았다.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최일도 목사님은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었다. 그의 삶은 말로만 신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신학 공부를 위해 준비하던 유학의 길을 접고, 청량리역 앞에서 쓰러져 있는 굶주린 노인을 보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꼭 강단 위에서만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최일도 목사님의 그 결정은 단지 한 사람을 돕겠다는 차원을 넘어,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그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는 단순함의 연속이었다. 매일 아침, 그는 직접 밥을 짓고, 라면을 끓이고, 따뜻한 국 한 그릇을 준비하며 복음을 전했다. 언뜻 보면 그저 누군가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행위는 성경 속 말씀이 실체를 입고 나타나는 순간들이었다. 삶을 통해 드러나는 복음, 그것이 최일도 목사님의 사역의 중심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밥 한 공기, 그의 눈빛에서 전해진 따뜻한 관심, 그의 발걸음이 향한 그늘진 거리들, 이 모든 것이 말씀의 실천이자 복음의 현장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사흘을 굶고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을 향한 그의 시선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그를 보고 다가가 말을 건네고, 따뜻한 음식을 건넨 그 목회자의 마음이, 내 마음에도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라는 진리가 그 장면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복음을 전하는 삶은 크고 거창한 사역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굶주림 앞에 말은 무력하고, 사랑은 행동이어야 한다
최일도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 중 하나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노숙인 두 명이 함께 있던 자리에서, 한 사람이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자 옆에 있던 노인이 짧지만 강렬한 대답을 던졌다. “삶은 라면이지.” 단순한 이 말 한마디에 담긴 진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이 대화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굶주림 앞에서 삶의 본질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절실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복음을 말로 설명하려 애썼던 순간들, 신학적 논리를 앞세웠던 대화들, 고상한 문장과 깊은 묵상이 오히려 현실의 고통 앞에서는 무력했음을 고백하게 된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말없이 내미는 도시락 하나가 오히려 진짜 복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내 마음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다.
말이 앞섰고, 생각이 많았던 나는 이제야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사랑은 결국 손으로 직접 밥을 짓고, 발로 움직여 찾아가는 것이며, 그 실천 안에 복음의 능력이 담겨 있다. 신앙은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며,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라면 한 그릇이 복음이 될 수 있다는 진리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 삶에 새기게 했다.
그리고 그 삶은 반드시 거창하거나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박하고 조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 한 사람씩 진심으로 품는 태도가 진정한 복음의 삶이다. 묵묵히, 그러나 끈기 있게 살아내는 그 자세가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제자의 걸음이다. 이 메시지는 ‘작은 자를 위한 복음’, ‘행동하는 신앙’, ‘삶으로 드러난 믿음’이라는 키워드로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나의 적용: 영적 굶주림에 밥보다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
이민자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단하다. 언어가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기에 마음을 나누기도 어렵다. 익숙했던 일상에서 멀어진 낯선 땅에서의 삶은 때론 불안과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그런 날들 속에서 교회는 나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예배당의 찬송가, 따뜻한 성도의 인사, 함께 나누는 식탁은 분명 감사한 은혜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늘 있었다. 형식적인 인사와 피상적인 교제 속에서,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식사도 했지만, 그 안에서 나를 완전히 채워주는 말씀의 깊은 교제가 없었다. 나는 물었다. 이 허전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그것은 ‘영적 굶주림’이었다. 영적으로 메마른 이 땅에서, 나 역시 말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육적인 위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밥은 배를 채우지만, 말씀은 마음을 살린다. 말씀이 없는 삶은 방향이 없고, 결국 쉽게 지치게 된다. 그런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요즘, 나는 매일 기도한다. 이 지역, 이 커뮤니티 안에도 말씀을 갈망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나처럼 말씀이 절실한 누군가가,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준비하고 있다. 나 자신이 먼저 말씀으로 충분히 채워지고, 영적으로 건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진짜 위로와 생명을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은 흘러야 하고, 나눌 때 살아 움직인다. 이민자의 삶 속에서, 나는 이제 밥보다 말씀이 먼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들과 연결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진심 어린 관계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

미래의 방향: 지금 할 수 있는 준비, 그리고 기도
아직은 작고 느린 걸음이지만, 나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내 방식대로 준비해 나가고 있다.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내용을 성실히 기록하며, 그 안에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과 삶의 방향을 정돈해간다. 동시에 기독교 역사와 신학에 대한 책들을 읽고, 신앙의 뿌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단지 지식으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배움을 통해 사람들과 진실하게 나눌 수 있는 언어를 다듬고자 한다. 가식 없고 생명력 있는 복음을, 일상 속의 언어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미국 서부에서 인턴십 중인 아들 Sam을 만나러 갈 계획이다. 그 여정 가운데, 북한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계신 임정현 사모님 부부를 직접 찾아뵙고 싶다. 그분들의 삶과 사역을 가까이서 보고 듣는다면, 나의 마음도 더 구체적인 비전으로 확장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언젠가는 나 역시 굶주림과 외로움 속에 있는 이들을 향해 내 삶을 내어놓게 되지 않을까. 아직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있다.
내가 품고 있는 그 비전은 단순하다. 육적으로 배고프지 않게, 영적으로도 외롭지 않게. 복음은 단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달되는 사랑임을 믿기에, 나는 그런 사역을 꿈꾸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작아 보일 수 있고, 어쩌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은 알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섬김, 말없이 흘려보내는 사랑,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나는 그 하늘의 시선을 따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준비와 기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 길의 끝에 누군가의 삶이 복음으로 물들어간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묵상은 오늘도 나를 부른다
마태복음 25장 묵상은 오늘도 나를 조용히 부른다. 이 말씀은 단지 오래전 예수님의 비유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내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는 이 단순하지만 깊은 말씀은, 내게 매일 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며, 믿음은 결국 삶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때로는 주저하고, 또 때로는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내면의 게으름과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말씀은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일으켜 세운다. 복음의 능력은 내가 누군가에게 말로 전하기 이전에, 먼저 내 삶 안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내 말보다 나의 선택, 나의 행동, 나의 방향에서 복음이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사랑에서부터 비롯된다. 단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용기, 하루 한 끼를 나누는 손길, 눈을 맞추고 안부를 묻는 관심에서부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이 말씀이 조용히 다가가길 바란다. 우리가 지닌 믿음이 오늘의 삶 속에서도 실제가 되기를, 말씀이 마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손과 발로 옮겨지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함께 지극히 작은 자들을 향해 따뜻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 세상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그 작고 조용한 걸음이 하늘에서 얼마나 귀한지를. 오늘도 마태복음 25장은 그렇게 나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