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장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며 전도의 자세와 기적의 사명을 일러주시고, 냉수 한 그릇의 섬김조차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의 방향성과 믿음의 실천, 그리고 그 기록의 가치를 깊이 일깨워줍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능과 사명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셨다는 구절을 읽을 때면, 나는 자주 마음이 멈추어 섭니다. 병을 고치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명. 언뜻 보기엔 대단하고 특별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 속에는 사람 냄새가 납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손길은 언제나 그 손을 내미는 사람부터 깎이고 다쳐야 하는 법이니까요.
내가 처음 신앙을 붙든 건, 그저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내 삶도 제자들처럼 무언가 변화되리라는 소망.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권능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묵묵히 감당해야 하는 일들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병원 문턱을 넘는 일이 아무렇지 않아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병보다 무서운 건 마음속의 고립과 절망이라는 걸,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또 내 자신을 보며 배워갔습니다. 의사의 손길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건, 누군가 나의 어둠을 ‘안다’고 말해주는 그 한 마디라는 것을.
가끔은 기도라는 것이 기적을 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단지 이 외로움 속에서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픈 몸짓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였다는 건, 그분이 가장 깊은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셨다는 뜻일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능은, 손에 쥔 힘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누군가의 고통 앞에 함께 멈춰 서는 능력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병든 이를 향해 다가가고, 나병환자의 손을 잡으며, 귀신 들린 이의 눈을 마주 보던 그들의 모습 속에,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봅니다.
이제는 압니다. 살아가는 일이란, 거창한 사명이나 위대한 기적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진심을 다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순간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오늘 여기에 임하는 길목이라는 걸.

오늘날의 전도와 말씀의 우선순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파송의 지침 같지만, 그 안에는 예수님의 섬세한 마음결이 숨어 있었습니다. 가장 연약한 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가라는 것. 그건 전도의 전략이기 이전에 마음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이 구절 앞에서 한참을 멈추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겠노라 하면서 정작 내 곁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했던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기도 제목을 나열할 때는 멀리 있는 나라와 낯선 이름들이 먼저 떠오르곤 했습니다. 뉴스에서 본 고통스러운 장면들, 선교지의 통계들, 도움이 필요하다는 간절한 음성들. 그러나 정작 내 가족,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 그리고 교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연로한 집사님을 위해 기도한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일이 늘 소리 높여 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종종 ‘전한다’는 행위에 집착했습니다.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왜 들으려 하지 않느냐며 마음속으로 답답해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전도는 어느새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내 신념을 입증하려는 논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조용히 나를 꺾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가라.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릴 때, 내가 거기 함께 하겠다.” 이 말씀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전도란, 내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열어놓은 문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날이 생각납니다. 우리 부부가 교회에 처음 나온 낯선 노인 부부에게 말을 건네고, 식사를 대접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큰 기대 없이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간 것뿐이었는데, 며칠 뒤 그 부부는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음식을 손수 사다 주셨고, 과분할 정도의 감사와 친절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얼마나 따뜻하고 진심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그 기억이 마음을 데웁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손 내미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어렵고, 기대가 섞여 있어서 실망도 큽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늘 ‘가까운 곳’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연약한 자, 가장 외로워 보이는 자, 그리고 가장 오래 침묵하고 있는 자에게 먼저 다가가라는 음성. 그 말씀이 오늘도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전도는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귀 기울이는 단 한 사람, 그 마음에 온기를 남기는 것이 전도라면, 나는 오늘도 작지만 진실된 사랑을 품고 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냉수 한 그릇의 섬김과 눈물의 감동
10장 42절,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말씀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행하는 가장 작은 섬김조차도 기억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선교지에서, 누군가에게 물 한 컵을 건넨 순간조차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나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2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선교 사역과 단기선교의 계획들, 선교사인 오빠를 방문하러 러시아에 가서 있었던 일, 그리고 최근 동생이 선교사로 나가있는 말레이시아 선교지 방문을 준비하며 겪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감정적으로 오빠와 남동생에게 서운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오빠의 집에서 머물며 기도보다는 원망을 품었던 내 마음. 물질은 전했지만 정작 위로의 말은 하지 못한 채 돌아왔던 그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정작 나는 사랑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기도 중에 하나님의 위로가 밀려왔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작은 섬김조차 상급을 주신다는 그 말씀이, 그동안 내가 놓쳤던 따뜻한 손길들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냉수 한 잔의 섬김조차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나는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기록되는 믿음, 세대를 잇는 신앙
최근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기록하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팟캐스트를 통해, 심지어 아버지의 추도 예배를 통해서까지 그 뜻을 확증하십니다.
어제의 추도 예배에서 아들인 Sam이 했던 마지막 기도는 내 가슴을 울렸습니다. “저도 저희 자녀들에게 이런 신앙을 물려주고 싶어요.” 그의 말은, 나의 기도 노트가 단지 나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믿음의 유산으로 쓰이길 바란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느끼게 했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신앙의 여정을 글로 남기고, 기도로 새기며, 자녀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명일지 모릅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들 Sam의 하나님이 되고, Sam의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는 그날까지, 나는 이 여정을 기도로 걸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Sam이 자신의 아이들과 나의 추도 예배를 드리는 날, 그가 기도노트 한 권을 펼쳐 내가 하나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읽는 상상을 합니다.
한국의 수필가인 박완서 작가가 책에서 가족의 기억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인생의 이면을 드러내듯이, 나 역시 삶의 잔잔한 기록들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습니다. 신앙이 삶이 되고, 삶이 곧 고백이 되는 길 위에 서 있으려 합니다.

마태복음 10장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마태복음 10장은 오늘 나에게 다시금 묻습니다. 너는 지금 복음을 전하고 있느냐,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그 길을 걷고 있느냐고.
복음 전파, 섬김, 회개, 그리고 기록. 이 모든 것은 단지 신앙의 실천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거룩한 여정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믿음은 말보다 삶으로, 이론보다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 한 권의 기도노트가 되어 다음 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와 믿음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는 5가지 통찰 – 마가복음 2장 묵상에서 얻은 과학, 증거, 믿음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