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 그리고 그 삶의 태도에 대해 깊이 있게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삶은 감동의 순간을 넘어, 꾸준하고 담대한 실천과 겸손함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장은 우리 삶에서 믿음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열매 맺는지를 다섯 가지 장면을 통해 드러낸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삶, 능력은 사명의 도구
누가복음 9장의 첫 구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 능력은 단지 놀라운 기적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도구였다. 내게도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도울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능력이 주어진 순간들이 떠올랐다. 병실에 있는 지인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던 시간, 낙심한 친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그날. 대단한 설교 한 마디 없이도,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이따금 나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화려한 언변도 없고, 탁월한 지식도 없고, 누군가를 압도할 만한 재능도 없지만, 주님께서 내 손에 쥐여주신 작은 능력들이 있다. 그것이 때로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 되고, 어떤 날에는 조용한 기도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은 명예의 배지가 아니라 섬김의 발걸음을 위한 도구다.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말없이도 복음을 전하게 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치유
11절에서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내 안의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현듯 떠오른다. 한겨울 찬바람이 매서운 날, 지하철 역사 안에서 덜덜 떨고 있던 노숙인을 본 적이 있다. 주머니를 뒤져 간신히 따뜻한 음료 하나를 내밀며 무심한 듯 말을 건넸지만, 그 순간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도 함께 느꼈다.
예수님은 단지 설교만 하신 게 아니었다. 그분은 눈에 보이는 고통을 지나치지 않으셨다. 나 또한 내 아이가 아플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가슴이 무너졌던 적이 있다. 그저 이불을 더 덮어주는 것 외엔 할 수 없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다. 우리의 전도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몸이 아픈 이뿐 아니라 마음이 지친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 시선이, 주님의 시선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복음은 개념이 아닌 삶,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
누가복음 9장 22절, 예수께서 자신이 고난받고 죽임당하고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들은 ‘복음’의 핵심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 복음을 이전과 다르게 느낀다. 단지 교리로만 이해하지 않고, 내 삶 속에서 그 의미를 하나씩 새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고,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내 삶 속에서도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한참 지치고 힘든 시기에, 아무도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던 날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요즘 많이 힘들지?”라며 전해준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다. 그것은 죽은 후에만 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볼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다. 복음은 머리로 이해하는 이론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배려의 삶임을 다시금 배운다.

다른 이의 방식도 하나님의 역사일 수 있다
49절에서 제자 요한이 예수님께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람을 봤다”고 보고하자, 예수님은 “그를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전엔 이해되지 않았다. 함께하지 않는 자는 적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했던 내게, 이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다를 수 있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틀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한때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기도하거나 예배드리는 이들을 비판의 눈으로 봤던 나다. 그러나 어느 날, 한 고등학생이 버스 안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끄러워졌다. 말없이 기도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야말로 살아있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처럼 누군가의 신앙을 바꾼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나의 오랜 침묵과 묵묵한 삶을 통해, 믿지 않던 친구가 “너처럼 살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말보다 삶이 먼저일 때, 주님의 향기는 더 선명히 전해진다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삶, 지금 꾸물거리지 말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삶은 말이나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난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서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내게 무거운 울림을 주었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내일 하지 뭐’, ‘이번 주는 좀 쉬자’며 미뤄둔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삶의 우선순위를 흐리게 만든 게 바로 그 미루는 태도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해야 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믿음의 게으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발밑에, 내 행동 속에 피어나는 현실이다. 언젠가 하루를 건너뛰고 기도를 하지 않았던 날, 마음속의 공허함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작은 게으름이 믿음의 근육을 약하게 한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그러니 오늘도 작은 결단을 한다. 무거운 마음을 끌고라도, 꾸물거리지 말고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삶의 태도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되새긴다.
